팔리는 것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
Cosmoprof Bologna 2025에 다녀왔습니다. 한국 언론은 매년 이 전시회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강조하며, “K-뷰티가 상을 휩쓸고 유럽을 매료시켰다”는 기사를 쏟아내곤 합니다. 실제로도 K-뷰티의 존재감은 분명했습니다. 특히 전시회 마지막 날, K-뷰티 부스는 젊은 팬들로 붐볐고, 직접 방문한 대부분의 브랜드는 샘플이 조기 소진될 만큼 높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국 제품의 퀄리티, 감각적인 디자인, 빠른 트렌드 반영 속도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많은 바이어들이 한국 제품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고, 그 관심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실제 제품력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좋은 제품”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한 관심과 인기가 곧 시장 지배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잘 만든 제품”과 “잘 팔리는 브랜드” 사이에는 여전히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 간극을 보다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대기업이나 체계가 잘 갖춰진 브랜드들은 안정적인 파트너십 구조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많은 중소 브랜드들은 여전히 “좋은 제품이면 팔릴 것”이라거나 “K-뷰티라는 타이틀만으로 충분하다”는 기대에 머무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관심과 반응은 충분히 뜨거웠지만, 그 인기를 실질적인 성과로 전환하기 위한 구조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아 보였습니다.
작년 파리에 이어 Beauty Istanbul에 참관하며 본격적으로 다수 유럽 뷰티 제품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관은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서, 브랜드 스토리와 감각적인 디스플레이, 패키징, 직관적인 커뮤니케이션까지 공간 전체가 하나의 브랜드 세계관처럼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클린뷰티"나 "지속 가능성" 같은 메시지를 정제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모습은 단지 화장품이 아니라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제품력이나 브랜딩, 그리고 전시 전략까지 확실한 차별성이 있었으며, 실제로 초도 물량을 들여와 유통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며 북미에서의 시장 반응을 살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이탈리아 무역청(ITA)에 소개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이탈리아 브랜드들과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이번 Bologna에서도 ITA의 정식 초청으로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고, VIP 및 유통 관련 네트워크 행사부터 이탈리아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비공식 미팅, 시상식까지 다양한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한 행사에는 전 세계에서 온 바이어들이 고르게 참여했지만, 한국 기업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어쩌면 현장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 바라보던 시선과 실제 현장의 온도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본 이탈리아 브랜드들은 대부분 단순한 제품 전시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참여했습니다. 브랜드 철학과 정체성, 스토리를 공간 전체에 녹여내는 구성은 인상 깊었고요. 각 브랜드의 메시지는 뻔한 “우리는 클린뷰티입니다” 수준을 넘어서, 각자의 언어와 스타일로 고유한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패키징부터 부스 디자인, 메시지까지 통일감 있게 구성된 전시는, 단기 가격 경쟁이 아닌 장기 파트너십을 염두에 둔 전략이었으며 현장 판매는 거의 없었고, 샘플도 함부로 배포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몇몇 브랜드는 매우 인상적이어서 테스트용 소량이라도 도매 구매를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이를 위해선 공식 웹사이트에 등록하고 검증 절차를 거쳐 MOQ(최소 주문 수량)를 충족해야 했습니다.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브랜드의 진정성과 거래 신뢰도를 함께 구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제가 마주한 일부 한국 브랜드에서는 여전히 K-뷰티의 인지도에 기대어 접근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물론 일반 소비자, 특히 글로벌 팬층과의 접점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고, 현장 분위기 자체는 분명 고무적이었고요. 다만 그 인기를 실질적인 비즈니스 구조로 전환하는 전략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특히 중소 브랜드 중 일부는 단기 수출에 집중하며 브랜드보다 제품 단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 글로벌 바이어 입장에서는 명확한 파트너십 기준이나 유통 구조가 불투명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전시 공간 구성에서도 두드러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관은 국가 차원의 통일된 테마 아래, 브랜드들이 하나의 컬렉티브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한국 브랜드들은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각 지방자치단체나 수출지원 기관을 통해 개별적으로 참가하다 보니 분산돼 있어, 하나의 흐름보다는 개별적 존재로 보이기 쉬운 구조였습니다. 차라리 ‘K-뷰티관’이라는 집약된 플랫폼이 있었다면, 그만큼 높았던 관심을 메시지로 연결하는 힘도 더 강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특히 좋았던 건 유럽, 중동, 북미, 남미 등 다양한 지역의 바이어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던 부분인데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대부분이 한국 제품의 품질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후”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컨대, 팔로업 이메일을 받았는데 바이어 전원을 cc에 넣은 단체 메일이었다는 불편한 사례나, 구글 번역기 스타일의 메시지로 인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반응도 여럿 있었습니다. 사실, 바이어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디테일은 곧 신뢰와 직결되는 요소입니다. 첫 메일부터 가격표를 첨부하거나, “MOQ는 높지만 특별히 이번엔 소량도 가능하다”는 식의 접근은 준비된 브랜드라기 보다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업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제품은 훌륭하지만, 신뢰 구조가 부족하면 바이어는 “아직 함께하기엔 이르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시회 시간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며, Cosmoprof가 단순한 제품 전시회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됐습니다. 첫날 네트워킹 행사에서는 유럽 각국의 주요 바이어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대화는 단순한 명함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시장을 이해하고 전략을 공유하는 깊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둘째 날 열린 VIP 행사와 시상식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각국 유통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이었고, 그 현장은 단순히 누가 인기 있는가를 넘어, 브랜드가 어떻게 평가받고 어떤 전략으로 시장에 안착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전시의 열기는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브랜드들이 만들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철저히 자국 브랜드로 향했습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 안에 담긴 치밀한 준비는 오히려 더 인상 깊었습니다.
행사 기간 동안 이 작은 도시의 숙박비가 몇 배로 치솟는 모습을 보며, 이 전시회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파급력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쇼케이스가 아니라 전략이 실현되는 무대였고, 브랜드들은 그 위에서 단지 제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연결의 구조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의 무대에서 경쟁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이제는 한국이 직접 플랫폼을 설계하고, 준비된 바이어를 국내로 초청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한국은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지만, 아직 그 방향성과 구도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이 흐름이 하나로 조율된다면, 한국 뷰티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중국 브랜드들의 빠른 성장세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프랑스 혹은 유럽 현지 브랜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중국에서 제조하고 중국 기업이 소유한 브랜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퀄리티도 빠르게 개선하고 있었으며, 특히 현지 언어로 구성된 브랜드 스토리와 유럽 정서를 반영한 패키징, 콘텐츠 전략 등에서 놀라운 수준의 현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놀라웠던 건, 단지 전략이나 비주얼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중국 브랜드 관계자들은 영어 소통이 매우 능숙했고, 현장에서도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었습니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의 니즈를 끝까지 파고드는 그들의 집요함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행사장에서 만났던 한 중국계 프랑스 브랜드사로부터 꾸준히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일정이 바쁘더라도, 그들의 진정성과 끈기에 미안함을 느껴 자연스레 답장을 하게 되는 스스로를 보며, 결국 지속적인 대화의 힘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브랜드가 가진 제품력과 트렌드 감각은 분명 강점이지만, 이렇게 끈기 있게 대화를 이어가는 구조나 태도에서는 아직 차이가 존재하는 걸로 보입니다. 현재 한국 브랜드들이 가진 글로벌 영향력은 상당히 큽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브랜드가 조금만 더 전략적으로 소통하고 대응할 수 있다면, 분명 더 많은 바이어가 역으로 먼저 찾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뷰티 제품들은 이미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제품력, 디자인, 트렌드 반영 속도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 역시 누구보다 한국 제품을 잘 알고, 애정을 갖고 현장을 누비며 자부심을 느끼기에, 지금처럼 반복되는 구조가 더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좋은 제품은 잘 팔릴 것”이라는 기대감, “우린 대세니까 잘될 거야”라는 낙관 속에 머물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장의 현실은, 언론이 말하는 성공담보다 훨씬 복합적입니다. 잠시 주목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 브랜드가 기억 속에 남기는 흔적은 크지 않기에 고객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시장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전시회를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지금, 한국 브랜드들은 진짜 전략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힌트는 이번에 마주한 글로벌 바이어들과의 대화 속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 브랜드에게 필요한 건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방향과 전략입니다. 브랜딩 메시지의 일관성, 바이어의 문화에 맞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거래 이후를 설계하는 팔로업 전략, 이 모든 것이 결국 좋은 제품을 넘어 좋은 비즈니스를 만드는 핵심입니다. 이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글로벌 확장이 가능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전시회는 단순히 보여주는 자리가 아닌 치밀하게 설계된 전략이 실행되는 무대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때로는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준비된 브랜드와 진정성 있는 바이어가 깊이 있게 연결되는, 소규모지만 고밀도의 전시 플랫폼, 그게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또 다른 한국의 뷰티 브랜드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매번 이런 글을 쓰면서 고민을 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전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진짜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까? 결국 내리는 결론은 같습니다. 한국 제품은 여전히 강하다. 그렇기에, 바뀌어야 할 건 제품이 아닌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한국 제품이 필요한 건, 당장 더 많은 수출이 아닌 더 오래 기억되고, 다시 선택받는 구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토대로 좋은 제품이 세상에 오래 남을 좋은 브랜드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